낙태 –자유보다 고통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2019.04.2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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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교계 신문에서 <낙태 위해 싸웠던 그녀, 회심 후 생명 위해 싸웠다>는 제목의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973년 1월 22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고 판결했다. 그 전까지 여성의 생명이 위험하지 않으면 낙태를 금지했던 미국 사회의 흐름을,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바꾸게 된 이 판결의 주인공은 노마 맥코비(Norma McCorbey)라는 여성이었다. 1969년 노마 맥코비는 강간을 당해 임신했다고 주장하면서 낙태수술을 요청했다. 병원은 임산부의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 아니고 또 성폭행 사건이라는 경찰의 보고서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에 그녀는 1970년 자신이 살던 텍사스 주를 상대로 낙태금지에 관한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는 맥코비였으나 신변보호를 위해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피고인은 댈러스카운티 지방 검사인 헨리 웨이드(Henry Wade)였기 때문에,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사건으로 알려진 이 소송의 결과, 미국 연방대법원은 7대 2로 낙태 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태아가 자궁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임신 6개월까지는 임신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권리가 여성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낙태 합법화 판결을 이끌었던 주인공, 노마 맥코비가 나중에 회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실 그녀는 성폭행 때문에 임신을 한 것이 아니었다. 16살부터 이미 두 아이를 낳았는데, 22살 때 세 번째 임신을 하면서, 아이를 낳느니 낙태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병원을 찾아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때 마침 여성의 낙태권 보장을 위해 집단소송을 준비하던 변호사들과 연결이 되면서 ‘로 대 웨이드’ 사건으로 발전한 것이다. 맥코비는 1995년,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I am Roe』 라는 자서전을 썼는데, 출판기념회를 하던 곳에서 낙태반대단체의 대표인 플립 벤햄 목사를 만났다. 벤햄 목사는 “노마 맥코비, 당신이 한 일로 인해 2,700만 명이 넘는 어린 아이들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벤햄 목사의 말에 충격을 받았던 그녀는 이후 몇몇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신앙을 갖게 되었다. 회심한 이후 그녀는 자신 뿐 아니라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태아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낙태 합법화’가 얼마나 큰 악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낙태반대 운동에 뛰어들었고, 죽은 태아의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낙태 반대 운동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었다(이상,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1451에서 인용).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 지난 11일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낙태를 허용하는 법을 다시 만들어야 할 상황이라고 합니다. <낙태>가 당사자에게는 고통스러운 문제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낙태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거나, 낙태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 주는 것은 상당히 곤란한 일입니다. 현대사회는 성경적인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윤리를 기준으로 볼 때도 지나치게 어그러지고 있습니다.
<낙태반대>를 단순히 구호로 외치는 것은 잔인한 일일 수 있습니다.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부득이 출산했을 때 그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시스템을 시급하게, 충분히 만들어야 합니다. 다만 사람의 이해관계 때문에 하나님 주신 생명을 해치는 것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사회가 된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낙태 허용 - 사람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잔인하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이 가져 올 결과를 우려합니다.
1973년 1월 22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고 판결했다. 그 전까지 여성의 생명이 위험하지 않으면 낙태를 금지했던 미국 사회의 흐름을,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바꾸게 된 이 판결의 주인공은 노마 맥코비(Norma McCorbey)라는 여성이었다. 1969년 노마 맥코비는 강간을 당해 임신했다고 주장하면서 낙태수술을 요청했다. 병원은 임산부의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 아니고 또 성폭행 사건이라는 경찰의 보고서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에 그녀는 1970년 자신이 살던 텍사스 주를 상대로 낙태금지에 관한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는 맥코비였으나 신변보호를 위해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피고인은 댈러스카운티 지방 검사인 헨리 웨이드(Henry Wade)였기 때문에,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사건으로 알려진 이 소송의 결과, 미국 연방대법원은 7대 2로 낙태 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태아가 자궁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임신 6개월까지는 임신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권리가 여성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낙태 합법화 판결을 이끌었던 주인공, 노마 맥코비가 나중에 회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실 그녀는 성폭행 때문에 임신을 한 것이 아니었다. 16살부터 이미 두 아이를 낳았는데, 22살 때 세 번째 임신을 하면서, 아이를 낳느니 낙태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병원을 찾아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때 마침 여성의 낙태권 보장을 위해 집단소송을 준비하던 변호사들과 연결이 되면서 ‘로 대 웨이드’ 사건으로 발전한 것이다. 맥코비는 1995년,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I am Roe』 라는 자서전을 썼는데, 출판기념회를 하던 곳에서 낙태반대단체의 대표인 플립 벤햄 목사를 만났다. 벤햄 목사는 “노마 맥코비, 당신이 한 일로 인해 2,700만 명이 넘는 어린 아이들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벤햄 목사의 말에 충격을 받았던 그녀는 이후 몇몇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신앙을 갖게 되었다. 회심한 이후 그녀는 자신 뿐 아니라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태아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낙태 합법화’가 얼마나 큰 악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낙태반대 운동에 뛰어들었고, 죽은 태아의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낙태 반대 운동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었다(이상,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1451에서 인용).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 지난 11일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낙태를 허용하는 법을 다시 만들어야 할 상황이라고 합니다. <낙태>가 당사자에게는 고통스러운 문제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낙태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거나, 낙태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 주는 것은 상당히 곤란한 일입니다. 현대사회는 성경적인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윤리를 기준으로 볼 때도 지나치게 어그러지고 있습니다.
<낙태반대>를 단순히 구호로 외치는 것은 잔인한 일일 수 있습니다.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부득이 출산했을 때 그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시스템을 시급하게, 충분히 만들어야 합니다. 다만 사람의 이해관계 때문에 하나님 주신 생명을 해치는 것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사회가 된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낙태 허용 - 사람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잔인하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이 가져 올 결과를 우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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