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묵상나눔[마26:69-75] 임충섭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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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마26:69-75]
임충섭집사
“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한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한 것처럼.. 그것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 평범한 믿음의 소유자가 아니었음, 그래서 더욱 예수님의 이름에 누가 될 행동을 하면 안 될 그런 자 임을 오늘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라는 말처럼
과거 시제는 혹 아닌지... 지금도 예수와 함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베드로처럼 함께 있었던 흔적만 가진
그런 신앙인은 아닌지 돌아 보아야 한다.
나는 아직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부담이 있음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표현에 속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단...이전 , 지금보다 조금 더 열정적인 사모함의 면에서는
떨어지는 것 같다.
지금보다 열정적일때
내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을 전하기 위함이란 생각을 가지려 애썼으며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내 인격과 신앙을 위하여 노력을 했었던 것 같으며
내게 주신 달란트가 조금이나마 타인들에게 영향을 미치었던 것 같다.
그러함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의 나는 그때 보다 조금은 ''예수님과 멀리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꼭 열정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예수님을 동행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잔잔함은 멀리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은 사실이다.
실은 오늘처럼 말씀을 가지고 나름 나를 돌아보는 것,
그래서 마음의 부담을 가지게 되는 것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은 증거라 생각은 들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진정 동행하는 것인가?
이전에는 조금 더 갈급한 외적인 상황이고 지금은 덜 그러함이 혹여 내 감정을 더 대비시켜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은 아닐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과거형'임이 사실이고 그러한 과거의 믿음이 되지 않기 위한 하나님의 자극이실 수 있으니 마음에 담고 오늘 하루를 이겨내야 할 것 같다.
오늘 내 열심이 낮아짐은 상황 탓인지, 신앙의 매너리즘 탓인지, 다르신 뜻에 의하여 연단의 새로운 과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사모함이란 면에서 변화가 없음은 사실이기에 아직은 희망적인 듯하다.
주여. 이 후 어떻게 인생이 펼쳐질지 전혀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동행하고자 하오니
부디 잡은 손 놓지 마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예수의 뜻 가운데 행하게 하소서.
도우소서. 지금도 예수님 사모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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