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귀향(鬼鄕)과 해원(解寃)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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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鬼鄕)을 보았습니다. 십수년 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 한과 슬픔이 배어 나오는 것을 감출 수 없어 영화가 끝난 후에도 먹먹한 가슴을 끌어안고 한참을 앉아있어야만 했습니다. 20만 명이 넘는 소녀들이 끌려갔지만, 돌아온 것으로 파악된 분들은 북한을 포함해도 채 500명이 되지 않고 그나마 지금까지 살아계신 분들은 우리나라 기준으로 40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영화가 다루는 것은 위안부로 끌려갔던 분들의 한과 고통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짊어지고 있는 한과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안부의 고통이라고 한다면 슬픔을 그분들만의 몫으로 떠넘기는 꼴이 될 것입니다. 나라 잃은 탓에 당한 고통을 어찌 몇몇 사람들의 아픔으로 축소시킬 수 있겠습니까? 비록 식민치하라고 해도 친일파, 부자들은 자기 딸을 어떡해서든 보호했을 것이고 가난한 시골 벽촌, 힘없고 연약한 분들만 딸을 빼앗겼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 원통함과 한을 어떻게 풀어야 하겠습니까?
영화에서는 무당의 굿을 통한 해원을 시도합니다. 특히 성폭행을 당하면서 동시에 아버지를 빼앗긴 내면의 상처를 짊어지고 있는 여주인공을 통해 위안부, 성노예 생활을 해야만 했던 소녀들의 원통함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영화가 우리 민족의 한과 고통을 풀어내기 위해 샤머니즘적 주술을 사용하는 것은 목회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쉬움이 있습니다. 다만 무당과 씻김굿이라는 영화적 장치 때문에 이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를 폄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도리어 한평생 고통과 한을 짊어지고 살아온 분들과 민족의 원통함을 무당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교회는 무엇하고 있느냐는 책망의 메시지로 들어야 하겠습니다.
영화는 위안부의 고통을 깊게 배인 아픔으로 묘사하지만, 선정적이거나 잔혹하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위안부여성들의 원통함을 풀어내는 것도 주술적 공감을 통한 주관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무당과 씻김굿이라는 영화적 장치는 어쩌면 식민통치하에서 고통당했던 여인들의 원통함과 일본에 짓밟힌 우리 민족의 한을 아직 객관적인 방식으로는 풀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제시대 우리 민족이 당한 원통함을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 풀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세월호 참사 이후 일부 기독교인들이 회초리기도회를 열고 우리사회의 부정과 타락이 제 탓이라며 자기 종아리를 내리친 것과 같습니다. 우리사회의 구조적 불의 때문에 벌어진 일을 진상규명조차하지 않고,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처벌하지도 않고,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 주지도 못한 채, 그 사건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 종아리를 내리친다는 것은 얼마나 실없는 일입니까? 그야말로 속병에 고약붙이는 꼴이 아닙니까? 위안부의 고통이나 세월호 참사 같은 민족사적 비극은 무당의 주술과 같은 사사로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경제적 보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여 역사에 기록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보상뿐만 아니라 후대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어야만 원통함을 어느 정도라도 풀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3월 8일(화) CBS전북방송 5분메시지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5분메시지 매주 화요일 21시 29분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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