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원통함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박용태목사)

본문

구약성경 레위기에 5가지 제사가 나오는데 그 중 의무적으로 드려야 하는 제사는 속죄제, 속건제 두 가지 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는 속죄제를 드립니다. 희생제물을 통해 죄와 허물을 씻어내는 것입니다. 독특한 것이 속건제입니다. 속건제 역시 죄를 씻어내기 위한 제사지만 속죄제와 구별됩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 앞에서 범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속죄의 제물을 드립니다. 그러나 모든 죄는 그 악된 행위로 인한 피해자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하나님 앞에서 ‘잘못했습니다’ 고백하고 속죄의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악한 행위 때문에 상처를 입고 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피해액의 1/5을 더해서 갚아 주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죄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입은 피해자와의 관계 속에서 다루는 것이 속건제입니다. 몇 해 전 <밀양>이라는 영화 중에 주인공의 아들을 유괘, 살해한 범인이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받았노라 떳떳하게 말했던 장면이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 운운하는 범인의 뻔뻔한 모습 때문에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영화가 묘사했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죄용서의 절차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런 식의 주장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지 않은 채 가볍게 용서받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속건제는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보상해 줌으로서 피해자의 마음에 맺힐 수 있는 억울함이나 원통함을 반드시 풀어내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요컨대 하나님은 구원받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의 잘못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 안에서 억울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세상에서는 얼마나 더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많이 일어나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타락한 세상에서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자세히 묵상하면서 억울함과 원통함을 풀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처럼 억울하고 원통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원통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 주지 않고서는 결코 건강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아둘람굴로 도망쳤을 때,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여 들었습니다(삼상22:2). 찬송과 기도를 통해, 또 공의와 정의를 행함으로 그 원통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개국공신들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억울하고 원통한 사람들이 그 원통함을 풀어내고 상처를 싸매면서 다른 상처 입은 영혼을 돌보는 일꾼이 되도록 길러 주어야 합니다. 상처 입은 영혼들의 억울함을 모른 체 할 것이 아니라 원통한 마음을 헤아려 주고 그들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이들의 한숨과 눈물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의지할 데 없어 방황하는 이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오는 16일은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정부와 집권여당이 진상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고, 원통한 이들의 한을 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깊은 생채기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원통함을 풀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4월 12일(화) CBS전북방송 5분메시지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5분메시지 매주 화요일 21시 29분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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