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고인 물과 흐르는 물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본문

요즘 우리 성도들과 같이 레위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워낙 오래전 출애굽을 배경으로 한 말씀이라 읽어내는 것이나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13-14장에 나병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악성피부병이나 곰팡이 때문에 부정하게 된 사람을 다시 정결하게 하는 절차를 읽을 때는 상당히 머리가 아픕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부정한 사람들과 달리 악성피부병 때문에 부정한 사람은 마치 시체처럼 진영 밖으로 나가야 하고, 다시 회복하는 절차도 상당히 까다롭다는 것입니다. 마치 제사장의 위임식처럼 몸을 씻고 속죄제의 피와 기름을 자기 몸에 직접 바르면서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 것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속죄일에나 행하는 아사셀염소의 흉내를 내면서 새 두 마리를 가지고 와서 한 마리는 속죄물로 드리기 위해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고 다른 한 마리는 들판에 놓아주어야 했습니다. 죄용서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절차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그 부분을 읽으면서 주목하게 된 것은 왜 부정한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속죄물을 흐르는 물 위에서 잡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흐르는 물과 고인 물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고인 물은 썩어 버리지만 흐르는 물은 살아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는 데, 비록 어느 정도 풍유적인 해석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 신앙과 삶도 고인 물이나 흐르는 물처럼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도 고인 물과 같은 교회가 있을 것이고, 흐르는 물과 같은 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고인 물이냐 흐르는 물이냐는 것은 크기나 역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크고 오래된 교회라도 고인 물이 될 수 있고, 또 반대로 흐르는 물과 같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똑같이 작은 교회도 고인 물이 되거나 흐르는 물이 될 수 있습니다.
고인 물과 흐르는 물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고인 물은 변화가 없습니다. 새로움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못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의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흐르는 물은 계속 변합니다. 어떤 활력과 생기가 있습니다. 커다란 저수지나 호수라도 고인 물은 오래지 않아 썩어 버리고 마침 내 죽어 버립니다. 그러나 흐르는 물은 아무리 작은 줄기라도 살아 있고 또 더 큰 영향을 미치면서 주변을 살아나게 합니다.
우리 신앙과 우리 삶이 흐르는 물과 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이나 연륜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늘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흐르는 물과 같이 살아있는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반응할 줄 아는 능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귀에 들리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움직이고 있는지, 하나님 말씀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저 익숙한 신앙습관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기독교인처럼 살고 있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신앙의 즐거움이나 하나님께 굴복하는 순종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고인 물과 같습니다.
흐르는 물은 비록 가늘고 볼품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께 반응할 줄 아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고인 물입니까? 흐르는 물입니까?  (4월 26일(화) CBS전북방송 5분메시지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5분메시지 매주 화요일 21시 29분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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