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먼지로부터 배우는 교훈 (강진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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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이 세상에 거세게 노출되었다. 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게스트하우스(도시민박)로 개조하여 운영하다보니 가까이 사는 자식이라고는 나 밖에 없어서 자주 들러 도와드려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SNS나 인터넷 매체가 지나치게 발달하여, 잘하는 것이 중요하고 잘못하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는 무서운 세상인지라 오는 손님이 만족하고 돌아 갈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해야만 한다. 연로하신 부모님만 운영 하시기엔 미덥지 않고 사람을 두고 하기에는 수입이 되지 않는다. 일단 부모님이 청소를 다하면 2차로 내가 정리 정돈을 한다. 주로 먼지와 머리카락을 제거하고 침구류와 세면대와 도구들을 반듯하게 정돈한다.
청소기와 물걸레, 흡착테이프를 이용하여 이불이나 바닥 창틀 등 먼지가 쌓일 수 있는 모든 곳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그런데 먼지란 것이 참 신기하다. 잡기도 어렵고 날려 보내 버릴 수도 없고, 없앴다고 생각했지만 금세 다른 곳으로 옮겨가 있거나 공중에 둥둥 떠다니다가 다시 앉아 버린다. 할 수만 있다면 먼지가 쌓일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반질반질하게 윤을 내본다. 앉았다가도 낙상하도록!!
지긋지긋한 먼지를 보며 생각을 해본다. 우리 믿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하고...
우리 믿는 성도들은 세상의 문화나 지식으로 나를 채우고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결하게 지키며 깨끗하게 유지하여야 함을 먼지를 통해 배운다. 하나님의 말씀을 힘입어 자신을 정결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세상이 주는 유혹이나 인본주의적인 상식, 나의 주관이 먼지처럼 주변을 맴돌다 내 안에 정착하게 되어 주인노릇하게 된다. 그것을 바로바로 털어내지 않으면 더 많이 쌓이게 되고 결국 포장까지 되어 말씀이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주님과의 사이에 간격이 생기게 되어 세상먼지가 더 좋을 수 있고, 좋지 않을지라도 점점 익숙해져서 거기에 안주하고 만다.
이것이 문제다. 쓰레기 하나가 한 곳에 모이면 그 곳은 점점 더 많은 쓰레기가 모이고 마침내 쓰레기장이 되고 만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과 같은 그런 현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하나님 앞에 경건한 의식을 행하고 지은 죄를 짐승의 피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했던 과거의 엄격한 제사법과 달리, 친히 우리를 위한 제물 되어 주셔서 믿음만으로 죄를 깨끗케 하신 예수님의 공로가 별것이 아닌 것처럼 익숙한 채 살아가는 나의 일상을 점검해 본다. 무엇이 그리도 바빠서 썩어질 것들을 위해 바치는 시간들이 그리도 많을 수밖에 없는지. 그래서 세상의 흙먼지, 분진들이 나를 에워싸도 그것이 중요하지 않으며 가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지.
세상먼지를 털고 말씀 앞으로 정결한 삶으로 돌아가자. 죄를 사할 수 있다면 비둘기라도 염소라도 잡아 바쳐야 했던 우리, 닭 한 마리 목을 비틀 힘이 없는 우리가 개미 한 마리 죽이기도 어려울 만큼 연약한 우리가, 죄를 씻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가기만 하면 우리를 정결케 해 주신다는 데 왜 마음을 다해 순종의 제사를 드리지는 못하는 걸까? 세상적인 욕심과 분주함, 주님께 나가지 못하게 하는 사소한 습관들, 이러한 죄악된 습성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세상먼지를 단호하게 털어내고 말씀으로 나를 광(光)내보면 어떨까?
먼지가 앉았다가도 금세 낙상할 만큼, 반질반질한 말씀의 광채를 발하는 삶으로 전환하기 위해 내 생활습관을 점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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