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복은 온 세상이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본문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는 말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은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귀하게 여겨 주기를 바라십니다. 마치 자녀의 소박한 효도를 기대하는 아버지의 마음과 같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를 잘 믿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예배를 드리거나 다양한 봉사의 사역을 감당하거나 시간과 물질을 드려 헌신하는 것은 의당해야 할 일입니다.
이 때 주님을 사랑해서 복음과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것도 당연히 기대할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복인지에 대하여는 약간의 묵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복을 받는다고 할 때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 읽어 보면 예수 믿어 받는 복은 단순히 개인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누리는 것이요 더 나아가 온 세상이 더불어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 12:3> 말씀하신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단지 아브라함 개인, 혹은 그의 혈통적 후손을 잘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민족들을 다 잘되게 하시려고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복을 받는다고 할 때 그 복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축소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복의 개념을 왜곡하는 것이요, 복음의 은혜를 우상종교 수준으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해서 토지소산의 첫 열매와 십일조를 비롯한 여러 가지 헌물과 헌금을 드렸습니다. 헌금과 헌물, 하나님을 위한 헌신을 가르칠 때마다 후렴처럼 뒤 따라 오는 말씀은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에게 주어 먹고 배부르게 하라 또는 함께 즐거워하라>는 명령입니다. 헌금과 헌신의 목표는 연약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나누어 주고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도 복을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말라기서에 십일조를 언급하는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이 말씀을 읽을 때는 온전한 십일조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그 십일조가 양식이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누가 먹는 양식입니까? 성전에 바치는 십일조의 용도는 예배비용,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양식,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먹어 배부르게 만드는 양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십일조를 잘 바칠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양식이 늘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헌신하여 헌금하는 사람들 때문에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위로와 복을 누리게 되는 바로 그 결과가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대하고 누릴 수 있는 큰 복인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 주변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0월 25일(화) CBS전북방송 5분메시지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5분메시지 매주 화요일 21시 29분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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