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율법이 아니라 은혜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본문

요즘 우리가 묵상하는 갈라디아서는 율법행위와 믿음을 선명하게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읽으면서 율법에 대하여 부정적인 마음을 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성경이 말하는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율법>은 항상 문제라는 식으로 은혜의 복음을 왜곡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율법 무용론(율법 페기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기준, 목표라는 점에서 율법은 여전히 효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 요14:21>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요컨대 성경은 율법이 필요없다,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초대교회 안에 율법을 빌미로 복음을 교란시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 교회 안에 들어왔을 때 이 율법주의자들이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주로 할례를 비롯한 유대인의 전통이었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한다, 행15:1>고까지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초대교회 안에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이들이 주장한 것은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서 참된 복음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은혜의 복음을 저버린 채 율법을 내세웠을까요?초대교회 안에 유대인들이 율법을 내 세운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방인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들은 이방인들을 자신들에게 익숙한 유대인의 문화에 동화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들이 율법을 내 세운 두 번째 이유는 율법은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따라 믿음으로 살려 하면 늘 가난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믿음과 은혜의 영역에서는 자신을 주장하거나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몇 가지 규칙을 지키면서도 자신이 율법을 나름대로 지켰노라, 자신이 할 일은 충분히 했노라 - 자신을 주장하고 내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스로를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자신을 차별화할 수도 있게 해 주는 것이 율법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율법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믿음과 은혜의 복음을 허물어뜨리는 교회의 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9> 연거푸 외쳤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자신을 내세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 아니고서는 자신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당화하면서 자신을 내세우려 하는 것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이겠습니까? 반면에 어느 누구도 은혜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복음이 우리를 얼마나 자유롭게 만들어 줍니까? 믿음으로 오직 은혜만 의지하면서 영혼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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