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바알 숭배를 포기해야 합니다.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본문

성경은 우상숭배를 음행과 동일시하면서 엄격하게 금지합니다. 특히 예레미야서를 비롯한 선지서를 읽다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음행을 그치지 않아서 크게 책망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마치 발정난 짐승처럼 행음하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책망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그들은 그토록 열심히 음행하며 살았을까요? 특히 우상숭배를 음행과 동일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상숭배와 음행이 늘 연결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숭배하던 가나안 땅의 우상이 바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알이나 몰렉이나 밀곰이나 애굽의 금송아지 등 성경에 등장하는 우상들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비를 제 때 내려주고 농사를 풍년으로 만들어 준다고 믿었던 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바알은 가나안 스타일의 다신신앙을 보여주는 신입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함께 등장하는데 바알은 남신이고 아세라는 여신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과 아세라가 성관계를 하면 비가 온다고 믿었고, 바알과 아세라의 성관계를 돕기 위해 예배하는 자리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성관계를 재현했습니다. 바알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높은 산 푸른 나무 아래서 음행했던 것입니다(왕상 16:4, 렘3:6).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시기를 가나안 원주민을 다 쫓아내고 그들이, 자기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작은 산/푸른 나무 아래든지 무론하고 그 모든 곳을 마땅히 파멸하라고(신 12:2) 엄중하게 명령하셨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이나 백성의 지도자/관리들이 다 같은 마음이었고 심지어 선지자조차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무익한 것/우상을 따라 갔습니다(렘2:8).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는 경건한 믿음보다 화려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더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바알숭배를 책망할 때 이것이 단순히 종교적 우상을 가리키는 말씀이 아닌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시대 바알을 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알이 더 풍요로운 삶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상징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 더 화려하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도덕, 대의, 사회적 가치, 연약한 이에 대한 배려가 사라져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풍요로운 삶에 대한 욕망이 우리 시대에는 돈에 대한 탐심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돈에 대한 탐심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경고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
우리 시대 돈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 돈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이 우리 시대의 바알인 것입니다. 돈으로부터 자유, 더 화려하고 더 풍요로운 삶으로부터 자유를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일한 생명의 원천, 우리 삶에 진정한 복이 되시는 분이 오직 우리 하나님이신 줄 믿고 더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더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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