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영적 자존심을 지킵시다.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본문

매사에 자존심을 지키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은 영적인 성장에 장애물이 되기 쉽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존심을 지키려 하면 영적으로 성숙하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자아가 강한 사람이 자존심이 셉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자기 부인을 배우는 과정이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인데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자존심을 다 지켜가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자존심이 센 사람들은 자기주장이 강합니다. 굽힐 줄 모르고 순종할 줄 모릅니다. 그러니 성령충만한 삶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존심 센 사람이 되기보다는 겸손하고 순종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영적인 자존심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영적 자존심이란 그저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세속적인 자존심과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영적 자존심입니다. 어떡해서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치열한 몸부림이 바로 영적 자존심을 지키는 삶입니다.
불레셋 진영 앞에서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군대를 대신하여 물맷돌을 들고 골리앗을 향해 달려가던 다윗,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외쳤던 다윗에게 이런 영적 자존심이 있었습니다.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단1:8)’ 결심했던 다니엘에게 이런 영적 자존심이 있었습니다.
에스더서에서 모르드개가 아각 사람 하만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을 자신의 분신처럼 만들어 모든 사람 위에 높였지만, 모르드개는 하만 앞에 엎드리지 않았습니다. 동료 페르시아 사람들이 하만에게 절하지 않는 것은 왕에게 대항하는 일이라 주장하며 날마다 권했지만 모르드개가 듣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 사람들이 다 죽임당할 위기에 빠져 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모르드개가 하만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가 모든 이방 사람에게 다 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페르시아 땅에 살면서 모든 이방인을 다 적대시했다면 모르드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아말렉의 후손, 아각 사람의 후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영적 자존심과 같은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바벨론 포로 70년이 끝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고 페르시아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출애굽한 언약 백성, 아말렉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타락한 세상을 살면서 영적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욕설이 난무하는 군대생활을 하면서 욕을 입에 담지 않은 청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 자존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직장 상사의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고, 돈이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세상에서 돈에 매이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영적 자존심을 지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영적 자존심을 지켜 내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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