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불성곽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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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회에 성벽/성곽이 없는 곳에 산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벽/성곽이라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한계가 있게 마련이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성벽 안에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자연스레 성벽 안에 산다는 것은 귀족들이나 소수 부자들만 누리는 특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언제 도둑떼가 몰려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성 밖에 산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70년이 끝나고 난 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 구축했던 삶의 기반을 다 포기한 채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거룩한 갈망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돌아 온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리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귀환을 환영하지 않고, 거룩한 공동체의 중심이 될 성전 건축을 싫어하는 세력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언약의 백성들이 흩어진 후 그 곳에 자리를 잡고 살던 이방세력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성전 건축을 조직적으로, 또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서 방해했습니다. 결국 적이 자신들을 공격할 때 도망칠 성벽조차 없는 상황에서,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슥2:5)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사라지고, 우리 안전을 보장해 주는 성벽이 다 무너진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처한 형편이나 가늠할 수 없는 장래를 생각하면 불안한 마음이 밀려 올 때가 있습니다. 설령 믿음으로 헌신할지라도 이런 불안에 매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페르시아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순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열정 때문에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헌신의 대가는 상당히 가혹했습니다. 돌아온 사람들은 너무 열악하고 어려운 처지 때문에 낙심한 나머지 혹 돌아온 것을 후회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믿음으로 헌신하면 복을 받고 은혜를 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가혹한 삶이 우리가 누릴 복일 때도 있습니다. 편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만 복이 아니라, 환란과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 복이요 은혜라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안전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살아가는 헌신자들을 격려하십니다. 지켜 주시겠노라 약속하십니다. 아람군대가 엘리사가 머물고 있는 도단을 포위한 적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엘리사의 사환을 위해 하나님이 그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한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왕하 6:14-17). 위험한 처지에서 하나님이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생활의 안전 보장책이 없다는 이유로 불안해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안정된 직장이나, 보험, 노후생활자금 등을 안전 보장책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쌓은 성벽이 완벽한 안전보장책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의 재물도 확실한 안전보장책이 되지 못합니다.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둔 부자에게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물으신 것처럼(눅12:20) 우리 삶에 대하여 질문 하실 때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불성곽 되시는 하나님만 힘껏 의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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