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무엇 때문에 불안하십니까?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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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에 매인 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이토록 화려하고 풍요로운 세상, 더욱이 비교적 안전한 환경에 살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의외로 걱정 근심을 짊어지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걱정, 근심의 이면에는 역설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가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그것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이 증폭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돈을 사랑하고 돈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돈 때문에 불안해 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 사나 걱정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걱정이 현실적인 염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건강 염려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혹시 건강을 잃으면 어쩌나, 병에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건강 염려증이란 병든 사람의 증세가 아니라 건강한 사람의 쓸모없는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건강한데도 늘 건강을 잃어버릴 염려와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 건강염려증입니다.
돈에 대한 걱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때문에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 중에는 돈을 너무 소중하게 여기는 나머지 스스로 두려움을 짊어진 분들이 있습니다. 돈을 삶에서 가장 귀한 가치와 목표로 여기기 때문에 돈 앞에서 작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자들 앞에서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어버립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며 초라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학벌이나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 작용을 합니다. 학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학벌 때문에 거만해 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축되기도 합니다. 사회적 지위/직업 등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힘겨루기를 하려 합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 부족한 것 때문에 애달파하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런 걱정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언제 어떤 형편에서든지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을 힘입어 삽니다(빌4:13). 세상이 이해하기 어려운 담대함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바울이 자신을 구류하고 있던 로마총독 벨릭스 앞에서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행24:25). 총독 벨릭스는 탐욕에 매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던 벨릭스 앞에서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했을 때 벨릭스가 바울을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재판하는 총독이 재판을 받는 죄수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바울이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총독이란 죄수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진 막강한 인물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사람의 면전에서 그의 죄를 드러내었습니다. 어쩌면 벨릭스는 자신에게 그렇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자기 운명의 키를 쥐고 있는 총독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주인이요 세상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귀하게 여긴다면 불안과 두려움을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만 신뢰하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담대함을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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