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복을 누리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본문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활동의 기본적인 동기는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재물이나 건강, 가정의 평안이나 자녀의 행복 등 사람마다 구하는 것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생로병사의 문제는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활동을 통해 얻고자 하는 복도 그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단순히 복을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가 아닌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창 18:18-19). 우리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과 입는 것을 비롯해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것처럼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많은 재물>이 아니라 단순히 <일용할 양식>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마 6:31-32). 그것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이나 구하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하는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예비하셨을 뿐 아니라,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더 나아가 40년 동안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고 발이 부르트지 않도록(신 8:4) 돌보아 주셨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걱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구해야 할 것은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마 6:33). 천국에 들어갈 소망만큼 중요한 것은 천국 백성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천국백성으로 살지 않으면서 천국에만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너무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악한 사람의 기도라도 들으십니다. 문제는 기도응답을 받고 복은 누리지만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곤란한 일입니다.
이번 주간에 묵상했던 히스기야를 생각해 보세요. 히스기야는 대단히 신실하고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셔서 <집을 정리하라 죽고 살지 못할 것>이라 선포하셨습니다. 그 때 히스기야가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자기 헌신을 기억해 주십사 부르짖었습니다. 그 결과 기도응답을 받았습니다. 죽을병에서 고침 받고 15년을 더 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더 살게 된 그 15년 동안 히스기야가 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을 지배하던 앗수르에 대항할 동맹국을 찾고 있던 바벨론이 보낸 사신을 극진히 환대하면서 반앗수르정책을 펴는 바벨론과 외교적인 협력관계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책망하셨지만 히스기야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가 낳은 아들 중에 므낫세가 히스기야를 뒤이어 왕이 되었는데 그는 남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 되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을 빠져나올 수 없는 악의 수렁으로 밀어 넣은 므낫세는 12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기도응답은 받고 복은 누렸지만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한 사람의 흔적이었습니다. 복을 누리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받들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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