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세상 풍조를 분별해야 합니다.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본문

고정희씨가 쓴 시(詩) <다시 악령의 시대를 묵상함>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밥과 자본주의> 중에 다음과 같은 싯구가 있습니다. “악령은 마귀 얼굴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 악령은 아름답습니다 악령은 고상하며 인자스럽고 악령은 언제나 매혹적이며 우아하고 악령은 언제나 오래 기다리고 유혹적이며 악령은 언제나 당당하고 너그러운 승리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일단 제압한 뒤 우리의 밥그릇에 들어앉습니다 악령은 또 하나의 신념입니다”
우리가 공기 속에 살아가는 것을 의식하기 어렵듯이 민감한 분별력이 없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이루는 구조나 신념 속에 배어 있는 죄악의 영향력을 깨닫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자유로운 사람들이나 귀족들이 노예를 형제로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노예를 노예로 부리는 것을 죄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노예제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노예신세가 되는 것은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해서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죄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풍속, 세상을 지배하는 신념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이야기가 펼쳐지던 시대, 사람들은 음행을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음행은 오히려 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음행을 죄라고 합니다. 고대 사람들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는 사람이 없고 우상 없는 지역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우상숭배를 죄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신념인데, 악한 것이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본주의(資本主義) - 재물이 삶의 근본토대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대단히 비성경적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경제, 재물을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하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안에 스며있는 죄악의 흔적을 고민하지 않으면 신앙이 병들고 교회가 무너집니다.
얼마 전 캐나다에서 대마초/마리화나를 합법화 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대마초합법화가 아닙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이면에는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보통 ‘자유주의’라고 합니다. 대마초라든지, 동성결혼 합법화 주장이든지 몇 해 전 우리나라 간통죄 처벌법이 없어졌습니다만, 이 모든 일들의 밑바탕에는 ‘자유주의’라는 신념이 있습니다. 심지어 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바람에 개인과 기업, 국가를 비롯한 경제주체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그대로 온전한 존재가 아니라 타락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타락한 인간, 죄악으로 병든 인간이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자녀를 키울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순백의 영혼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타락한 영혼을 가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기 보다는 도덕적 절제와 그보다 더 중요하게 경건함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신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구조와 문화 속에 배어 있는 죄악의 권세를 주목하고 맞서 싸울 줄 알아야 합니다(고후10:3-6, 엡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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