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분노의 질주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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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년 여행을 할 때 조지아, 트빌리시를 방문했습니다. 저는 그 곳에 머물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지만 조지아/아르메니아가 요즘 한참 유명세를 얻고 있는 관광지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한번은 주말에 시내를 나갔더니 중심가에 있는 큰 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벌써 한 달 째 길을 막고 <분노의 질주>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영화였는데 벌써 10번째 영화를 찍고 있다고 했습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개봉하는 상업 영화인데, 벌써 10번째 영화를 찍고 있다면 대단하구나 싶어서 여행 중 짬이 날 때 두 어 편을 보았습니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있었지만 제가 보기에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본 후에 제 마음에 남는 질문은 <누가 선(善)이고 무엇이 악(惡)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체로 전통적인 영화, 드라마, 이야기에는 선과 악의 대립이 뚜렷하게 나타나거나 최소한 구분은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설령 이야기 속에서 선(善)이 악(惡)을 이기지 못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경우에라도 어느 편이 선인지는 드러납니다.
그런데 <분노의 질주>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이 애매하게 보였습니다. 주인공들은 고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바르고 정당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인공들은 사회적인 일탈행위를 버젓이 저지르거나 대놓고 범죄를 저지릅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지만 죄책감이 없습니다. 물론 그런 장면들은 사실 주인공의 문제가 아니라, 시나리오작가나 영화감독이 작품에 비벼 넣은 메시지입니다. 영화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보는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지만, 영화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저 보고 즐기는 것이지 영화 한편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영화는 장면 하나하나, 색깔 하나하나, 배경과 음악과 배우들의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가 모두 세심하게 기획된 것이라는 점에서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10번째 작품을 찍을 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영화라면 이런 영화의 영향력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인생은 즐기는 것이다’, ‘인생은 한방에 걸려 있다’는 등의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에 담겨 있는 정신을 받아들인다면 선과 악의 구분선을 찾는 일 자체가 고리타분해 보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물론 우리 삶에서 선과 악의 구분선을 흑백 구분하듯이 찾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삶에 대한 소망을 저 버린 채, 그저 즐겁고 흥분되는 삶을 추구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하게 된다면 경건한 삶은 뿌리부터 무너져 내리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 풍조(엡 2:2)”가 어떻게 우리 생각과 삶을 물들이고 있는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대의 문화적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두 눈 뜨고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영화, 드라마, 이야기가 ‘하나님’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 ‘선과 악’에 대하여, ‘더불어 살아감’에 대하여, ‘삶의 의미’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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