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세상의 정체를 주목해야 합니다.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본문

요한계시록은 타락한 세상을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책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정체를 폭로하고 드러내 주는 기능을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찬찬히 묵상하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결국 심판받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사례가 요한계시록 6장에서 일곱 인을 뗄 때 나타나는 말 탄 자들입니다. 고대사회에서 말을 타고 있는 자는 상당한 힘과 세력을 갖춘 존재입니다. 이들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처음 등장하는 흰말 탄 자는 활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도 멀리서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무기를 가진 이 사람은 이미 승리해서 면류관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무엇에 대항하여 싸우는 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는 이처럼 이기기를 다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무슨 일에서든지 경쟁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성취에 만족이 없습니다. 무한경쟁사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쟁이 사회를 발전시키고 삶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거짓된 믿음을 전파하면서 경쟁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무한 경쟁시스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패배감과 열등감에 짓밟히고 있습니다. 분노와 적개심이 점점 더 증폭되고 있습니다. 무한경쟁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 삶과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인을 뗄 때 등장하는 자는 화평을 제하면서 서로 죽이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땅에서 화평을 이루어내려 하십니다(엡2:14). 붉은 말을 탄자는 예수님이 하신 일과는 정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큰 칼을 받았습니다. 남을 해치면서 또  상당히 과시적인 무기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화평이 사라지는 것, 서로 간에 친밀감을 잃어버리는 것, 화목해야 할 관계가 깨어져 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서로간의 오해가 자라나서 갈등과 미움으로 발전하고, 결국 상대방을 자신의 적으로 여기면서 마침내 무너뜨리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 지 깨달아야 합니다. 접촉은 많지만 진정한 만남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 친밀감, 서로 좋아하는 마음 없이 살아가는 것, 상당히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셋째 인을 떼실 때 등장하는 검은 말 탄자는 손에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양식을 적절하게 분배하지 못합니다. 밀과 보리의 가격이 평소 로마제국의 평균치에 비해 거의 8배에서 많게는 16배까지 치솟습니다. 그러나 감람유와 포도주는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기호품, 사치품에는 영향이 없지만 주식으로 삼아야 할 양식을 수급하는 데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곡물 가격이 치솟게 되면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호품, 사치품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부자들이나 세력 있는 사람들은 곡물 가격에 상관없이 풍요롭게 살아갑니다. 빈부간의 격차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어느 때나 사회가 타락해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지경이 되면 빈부격차가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납니다. 우리 시대 자본주의 문화가 빈부격차를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이 풍요롭다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큰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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