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오랜 시간, 깊은 사랑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본문

오랜 시간 같이 생활했다고 해서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묵상하는 창세기를 보면 밧단 아람에서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라반과 야곱이 서로 헤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은 자신의 가족들과 모든 소유를 이끌고 아버지 이삭에게 돌아가려고 하는데 거의 야반도주하다시피 합니다. 야곱은 라반이 양털을 깎을 때를 도망칠 기회로 삼았습니다. 목축하는 사람에게 양털을 깎을 때란 농부가 한해의 소출을 거둘 때처럼 일종의 축제를 벌이는 시기였기 때문에 라반의 주목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라반이 양털을 깎을 때라면 야곱도 양털을 깎아야 했을 것입니다. 양털을 깎지 않은 양은 털의 무게 때문에 이동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므로, 야곱이 신속하게 이동한 것을 보면 야곱은 밧단아람을 떠나기 위해 아주 주의 깊게 준비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야곱이 도망친 지 삼일 만에 야곱의 도주 소식이 라반의 귀에 들어갔고 라반이 칠일 동안 추격해 와서 길르앗산에서 만났습니다. 하란에서 길르앗까지 거리가 약 450Km쯤 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야곱은 온갖 가축을 이끌고 하루 40-45Km정도를 이동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의 필사적으로 도망했던 것입니다. 야곱이 야반도주하고 라반이 추격해 오는 장면을 보면, 야곱과 라반이 오랜 시간 같이 생활했지만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과 라반, 두 사람은 서로를 속이고 또 서로를 이용해 먹으려는 관계였습니다. 라반은 품삯 없이 거의 이십 여 년 동안 야곱을 부려먹었습니다. 야곱에게 품삯을 주기로 약속한 후에는 야곱의 몫을 최소화하기 않기 위해 야비한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라반과 야곱은 장인/사위 지간인데도 재물과 가축을 두고 다투면서 서로를 이용하다 보니 점점 더 사이가 벌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요압과 다윗은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요압은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다윗과 함께 동행 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다윗의 군대 장관으로 큰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압과 다윗은 좋은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말년에 요압은 다윗을 배신했으며 죽어가던 다윗 역시 요압을 결코 가만 버려두지 말라고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길 정도로 요압을 경계했습니다(왕상2:5-6). 오랜 세월 같이 생활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이처럼 깨어진 관계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부부와 친구들, 동업자들의 관계가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오랫동안 같이 신앙 생활하다가 서로 다투거나 좋지 않은 관계로 전락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비극입니다.
교회 안에서 많은 은혜를 누리면서 하나님을 함께 예배하는 사람들이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돈독했던 관계들이 깨어져 나가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좋은 관계는 언제나 희생적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디선가부터 사랑이 흘러가야 합니다. 어차피 죄인들끼리의 만남인데 서로를 똑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좀 더 많은 은혜를 누리고, 좀 더 풍성한 하나님의 경험한 영혼이, 더 가난한 심령을 향해 은혜와 사랑을 흘려보내는 것만이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고, 깨어진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 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 예배하면서 우리가 더 깊은 사랑으로 젖어들어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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