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자녀 양육에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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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 차세대 양육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시골지역은 고사하고, 대도시 교회 안에도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너무 적어서 주일학교 운영이 안된다는 말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신앙열정이 자녀들에게 제대로 전수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들려 온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해법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는 자녀의 신앙을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신앙교육, 가정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누가 감히 이런 주장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영적상태를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할 때, 가끔씩 자녀 신앙을 빌미로 부모를 너무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본받는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분명히 본받게 되지만 그럼에도 똑같은 모양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얼핏 살펴보기만 해도 신실한 부모요 정말 좋은 신앙과 성품을 가진 분이지만, 자녀 때문에 마음 고생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또 정반대로 부모는 고약한 사람이지만, 자녀들은 정말 좋은 신앙과 훌륭한 인격을 갖춘 경우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중요하지만 신앙을 가정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불신가정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나 청년들은 어디서 신앙을 배워야 하겠습니까?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을 강조하게 된 배경은 어쩌면 교회가 이미 지나치게 노화되어서 교회 안에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2세나 3세가 많아졌고 그들이 교회 차세대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는’(요 1:13) 것은 분명코 아닙니다. 
부모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녀의 영적 상태보다 세속적인 욕망에 눈멀어 있는 부모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자녀의 신앙을 망치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녀의 신앙을 빌미로 부모를 너무 비난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모세의 후손은 별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삿18:30).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는 고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삼상 8:3).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았던(행 13:12) 다윗의 자손들은 다윗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자녀들 때문에 마음아파 하는 부모들에게는 비난과 책망보다 먼저 위로가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돌보지 못한 자녀가 더 위대하게 된 사례가 성경에 많습니다. 애굽의 요셉이나 바로의 궁궐에서 자라난 모세를 생각해 보세요. 타락한 실로 성막에서 자라났던 사무엘이나 젊은 날 광야에서 유랑할 수밖에 없었던 다윗이나 바벨론의 다니엘 등을 생각해 보세요.
부모의 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할지라도 우리 자녀들에게는 더욱 은혜가 필요합니다. 좋은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것이 부모 잘난 탓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인 줄 알고 더욱 감사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고약한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완악한 사울을 변화 시키사 복음의 증인 되게 하시고, 방탕했던 어거스틴을 새롭게 하사 위대한 교회의 스승으로 일으켜 세우신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살아계신 하나님께 우리 자녀들의 삶 가운데 강권적으로 역사하사 십자가의 영광을 주목하고, 하나님의 영광 앞에 무릎 꿇게 하시기만 기도합니다(박용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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