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아벨의 인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본문

전도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전도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데 ‘헛되다’는 말입니다. ‘헛되다’는 의미로 번역되어 있는 ‘헤벨’(הֶבֶל)이라는 히브리말은 본래 입김, 안개, 수증기 같은 것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결코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말에서는 ‘헛되다’고 할 때, 덧없다, 쓸모없고, 가치 없고 무의미하다는 뜻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할 때 ‘인생무상’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곧바로 허무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지만, 성경이 ‘인생 허무’를 가르치는 것도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무엇이 영원한 가치를 갖는 삶인지를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다 보면 자칫 헛된 인생을 살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인생인지, 무엇이 복 받은 삶인지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다를 때가  자주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기록으로 유명한 히브리서 11장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는 믿음의 조상이 아벨입니다(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신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아벨이 가인에 의해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아벨이 비록 죽었지만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고 선언합니다.
전도서에서 헛되다고 번역한 ‘헤벨’(הֶבֶל)이라는 단어가 이름으로 사용된 것이 우리가 아는 ‘아벨’(הֶבֶל)입니다. 아벨은 짧은 인생을 살았고 비참하게 죽었지만 결코 헛된 삶이 아니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받아 주신 예배자였습니다. 비록 오랜 세월 살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임 당했다고 하지만, 아벨은 자기 죽음으로 죄악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시기, 질투가 어떻게 미움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미움이 어떻게 비참한 결과를 낳는지를 폭로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벨은 하나님이 어떻게 억울하고 원통한 사람의 한을 풀어 주시는지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땅에서부터 호소하는 아벨의 피소리를 들어 주시는 분입니다(창4:10). 아벨은 하나님이 어떻게 정의로운 분이신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억울하고 원통한 아벨의 피가 흐르는 땅은 저주를 받아 황폐한 곳이 됩니다. 원통한 사람의 눈물과 신음이 배어 있는 땅은 사람이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아벨은 폭력을 휘두르는 세상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양립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벨은 그의 믿음, 그의 의도치 않은 희생적 죽음으로 많은 것을 입증하며 증거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요컨대 아벨은 비록 잠깐 있다가 사라진 인물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헛된 인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헛된 삶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작고 연약해 보일지라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장애물을 만나거나 어려움 앞에서 쓰러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 앞에서 귀하고 아름다운 헌신인 것은 틀림이 없는 일입니다.
세상의 헛된 삶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시고 인정하실만한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만 빕니다.                                                                            (박용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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