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성탄절에 예수님을 높여 드립시다.

본문

사복음서를 읽어보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만,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에는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강조하지만, 상대적으로 예수님의 탄생이야기에는 그만한 비중을 두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초기 교회 역사에서도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날이 언제인지를 확인하고, 부활절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에 대한 관심은 적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 언제인지에 대한 문제는 논쟁거리가 되었고, 성경에서 분명한 근거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최종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서방교회는 12월 25일을, 동방교회는 1월 6일을 성탄절/주현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탄절 자체를 지키는 것도 때로 논쟁거리가 되어서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 중에는 성탄절이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성탄을 빌미로 세속적인 축제 벌이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고, 유럽에서부터 건너 온 성탄트리, 선한 일에 대한 공감으로부터 출발한 선물 나누기 전통 등이 산타클로스로 발전하면서 성탄절에 이 모든 것이 한 데 어우러지게 되었습니다. 성탄절이 지금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축제를 벌이는 휴일이 된 것은 1870년 미국 의회가 12월 25일 성탄절을 국가 휴일로 지정한 데서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이후 자신들에게 익숙한 기독교 문화를 이교 세계에 전파하려는 서양선교사들의 순수한 열정과, 성탄절을 이용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의 세속적이며 창의적인 노력이 곁들여지면서(빨간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등) 오늘날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성탄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나마 과거에는 성탄절을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면서 예배당을 중심으로 신앙적 경험을 할 수 있는 문화가 있었는데, 요즘은 종교적 색채를 지운 채 홀리데이 ‘HOLY DAY’라고 부르는 경향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하는 ‘HOLY’라는 단어에서는 ‘거룩하다’는 의미보다는 그저 ‘휴일’이라는 의미가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성탄절에서 기독교적 색채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당에서 지내는 성탄절보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경험하는 화려한 홀리데이 문화가 더 주목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성탄절이 방학과 상관없는 때가 되어서 주일학교 학생들이 여유를 가지고 다양한 교회 문화를 경험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를 기록할 때, 똑 같이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메시야’가 오실 것에 대한 분명한 약속이 있었지만 세상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주목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찬송하고 높여 드리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동방으로부터 박사를, 천군천사를, 목자들을 불러 내셨다는 것입니다.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은 온 예루살렘을 소동하게 만들었습니다(마2:3). 하나님은 분명히 세상이 예수님을 주목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비록 성탄절이 정체불명의 화려하고 세속적인 축제날로 변질되고 있지만, 이 와중에 예수님을 주목하고 예수님을 찬송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 되겠습니다. 그저 낭만적인 분위기에 젖어 화려함과 방탕함으로 휩쓸려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동이라도 일으키며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꼭 필요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린다면 세상에 무슨 소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여전히 찬송과 영광을 받으셔야 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번 성탄절,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높여 드릴 수 있을까요? (박용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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