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만남과 사귐이 중요합니다.

본문

얼마 전 묵상했던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구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요일4:1-3)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요한일서를 기록하던 시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예수님이 육체를 가지고 계셨음을 강조하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처음 복음이 증거 되고,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시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정신적 세계는 순결하고 가치가 있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의 세계는 더럽고 부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는 구호가 공공연히 통용되었고, 영혼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최대관심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몸/물질의 중요성을 명백하게 보여 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몸을 부정하게 여기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이며 정신적인 세계를 추구하던 사람들에게 우리 구주 예수님이 몸을 가지고 계셨다고 말하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도요한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 선포했을 때, 당시 문화를 지배하고 있던 시대정신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비록 죄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병들고 어그러졌지만 이 모든 세상을 하나님이 더 아름답게 회복하신다는 소망이 성경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똑같이 연약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은 비록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지만, 여전히 몸을 입고 부활하셨고,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대속의 제사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에게 몸이 다시 살아날 것에 대한 약속과 소망을 주셨으니, 이 복음이 얼마나 놀랍고 충격적인 소식입니까?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몸을 입고 부활하심으로 장차 몸이 다시 살아날(고전15:35-54),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몸을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합니다(롬12:1). 하나님은 우리 마음과 생각뿐만 아니라, 우리 몸으로 하는 모든 일을 통해 영광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고전6:20).
우리 신앙고백이 그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인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 애초에 마음과 몸을 구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롬10:10)’고 합니다.
코로나 이후 교회 안에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 중 하나가 직접 만나지 않고도 예배와 양육과 교제 등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몸과 몸의 만남과 사귐이 없이 온라인으로 만나는 것이 시간과 공간을 한계를 뛰어넘는 효율적인 방안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몸과 몸이 만나서 경험하는 은혜를 무너뜨리는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분명한 것 같습니다.
영적이며 정신적인 것을 추구했던 시대, 예수님이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물리적 박해를 면하기 어려워서 ‘모임’자체가 상당한 위험을 동반했던 시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을 따르지 말라’고(히10:25) 경고했던 것을 좀 더 주의 깊게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은혜와 영적 성숙의 방편이 만남과 사귐과 섬김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반복해서 가르치는 말씀을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엡4:16, 골2:19). 온라인이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다고 말할 때, 당연히 짊어져야 할 헌신과 포기와 희생의 길을 외면한 채, 혹은 자신이 그런 헌신을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춘 채, 그저 육체의 만족과 게으름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온라인이 꼭 필요한 분들이나 그런 상황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 영혼을 살게 하는 은총이 원칙적으로 몸과 몸의 만남, 몸과 몸의 사귐을 통해 흘러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박용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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