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본문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만드셨을 때,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했다고 합니다(창 2:25).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의 몸매와 미모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기가 막혔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아담과 하와가 수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도덕적 유아 상태였다는 말일까요?
성경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할 때 강조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본래 상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말입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이 있는 모습 그대로, 날 것 그대로 드러나도 비난이나 공격을 받지 않고, 용서가 되고 용납이 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상대방을 굳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염려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남들의 이목이 두려우면 자연스레 눈치를 보게 되고, 가능하면 자신을 감추려고 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담을 쌓으며 마음을 걸어 닫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로워지게 되고, 삶의 즐거움이나 감격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을 지나치게 부풀리려고 합니다. 큰소리를 치면서, 외모로, 화장이나 옷차림으로, 자기 직업이나 돈으로, 자식 자랑으로,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를 떠벌이면서 자신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자신을 과시하고 부풀리려고 하는 사람들은 마치 풍선에 바람을 계속 불어 넣는 것이 위태로운 것처럼 위험해 지고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분들은 홀로 있는 시간이 우울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서적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회는 잃어버린 은혜를 회복하는 곳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은총이 회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죄와 허물은 씻어 주시며, 의롭게 하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십니다. 거저 받아 누리는 은총입니다. 이 은혜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가리지 않습니다. 잘나고 못난 것이 기준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만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주눅 들지 않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거저 주시는 은혜와 사랑 외에는 소망이 없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불쌍한 영혼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험악한 영혼을 만나더라도 놀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타락한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상처를 받은 이라도 품어 낼 수 있는 것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무능한 사람들, 연약한 영혼, 실패한 인생에 대하여도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은혜를 아는 분들은 연약한 영혼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용납하며 용서하는 능력을 배우게 됩니다. 자신도 그 은혜 때문에 회복이 되고 살아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은혜가 회복되기만 기도합니다.(박용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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