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MK/MK 수련회를 도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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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가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일꾼을 처음 보낸 것은 1902년 감리교회에서 하와이 이민단을 위해 전도인 홍승하(洪承河)를 파송한 일입니다. 홍승하는 하와이로 이민하여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가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도우면서, 1903년 하와이 “호놀룰루 한인교회를 설립하고 사역하다가 건강상의 문제로 1907년 귀국했습니다. 하와이에서 5년여 남짓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역했기 때문에 ‘선교사’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타문화권에서 사역했던 분이 홍승하선교사였습니다.
(교단분열 이전) 장로교단이 1912년 9월 <조선 장로교 총회>를 창립하면서 이를 기념해서 공자의 고향 중국 산동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선교비 마련을 위해 전국 교회가 추수감사주일을 ‘선교주일’로 지키도록 했고, 1913년 총회에서 김영훈, 박태로, 사병순 목사를 첫 해외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열심히 사역했지만 1916년 박태로 선교사가 질병으로 귀국했고, 1917년 김영훈, 사병순도 사역비 부족과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선교지를 이탈, 파송교회/교단의 허락 없이 돌아와 버렸습니다. 그 이후 여러 교단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했고,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기간 동안 위축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난 20-30년 어간 한국교회가 확장되면서 수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비록 많은 선교사를 파송 하기는 했지만, 선교사들을 충분히 후원하거나 장기적인 사역을 걱정 없이 할 수 있도록 지원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100여 년 전 선교사들이 낯선 환경에서 병이 들고, 경제적인 문제, 자녀교육의 문제 등에 부딪친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많은 선교사들이 현지에서 남모르게 고군분투하는 형편입니다.
선교사들의 상황을 잘 헤아리고 그 분들이 염려 없이 사역할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하는 것이 파송교회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선교사님들의 고민과 어려움 중에 MK(Missionary Kids/선교사 자녀)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자녀를 염려하고 자녀들을 잘 키워보려고 애쓰지만, 선교지에서는 정치, 종교, 경제적 조건이 너무 열악해서 학교교육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MK들은 다양한 문화, 여러 언어권에서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인,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안정적으로 키워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힘 있게 자라는 MK가 있는가하면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지내는 MK들도 있습니다.
7월 10일부터 160여명 MK들이 우리 교회에서 닷새 동안 캠프를 하게 되었습니다. MK들을 먹이고 재우는 일을 우리 교회가 담당하는 것입니다. 조국 교회가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다운지, MK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기회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우울하고 외로운 MK들이라도 마치 주님 품에서 위로를 받는 것처럼, 엄마 품에서 안식하는 것처럼,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 세계 흩어져 있는 선교사들과 MK들이 한국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전주제자교회를 통해 받은 은혜와 사랑에 미소 지을 수 있는 감동의 역사를 만들어서, MK들에게 의지할만한 버팀목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 주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MK수련회, 은혜와 기쁨을 나누면서 하늘의 복에 참여할 기회를 확실하게 부여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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