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어떤 가정예배를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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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묵상하는 예레미야서를 보면,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모습 중에 온 가족들이 함께 한 마음으로 우상을 섬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나를 격노하게 함이냐 자기 얼굴에 부끄러움을 자취함이 아니냐(렘7:17-19)
자식들에게 땔감을 줍게 하고, 아버지는 불을 피우고 엄마는 그 불을 이용해서 과자를 만들어 우상 앞에 제물이 바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의 여왕’이란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가 사역할 당시 앗수르와 바벨론 등지에서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풍요와 전쟁의 신이라고 여기면서 받들어 섬겼는데,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런 우상 숭배가 마치 선진문물이나 되는 것처럼 도입해서, 자녀들에게 우상섬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해든 달이든 별이든, 다른 어떤 모양을 갖춘 것이라도 기본적으로 우상으로 상징되는 초월적인 힘을 이용해서 자기 꿈과 소원을 이루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상숭배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일이요, 그 소원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더 건강하고 더 윤택하며 더 화려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최소한 예레미야시대 유행했던 우상숭배는 우상숭배자들에게 더 화려하고 풍요로운 삶을 약속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우상숭배자들이 더 화려하고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 갔다는 것입니다. 급기야 우상숭배를 위해 자녀를 불사르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렘7:31). 더 화려하고 더 풍요로운 삶에 대한 욕망에 매이게 될 때, 그 사람이나 그런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사회가 괴물처럼 변하는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은 우상숭배자가 걸어가는 길과는 전혀 다릅니다. 자기 꿈을 이루고, 더 화려하고 풍요로운 삶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 위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아가는 삶을 명령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고 명령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목표가 더 화려하고 풍요로운 삶을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려고 하시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종교적인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할지라도(렘6:20), 더 화려하고 더 풍요로운 삶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세상의 종노릇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녀들과 함께 예배하며 기도할 때, 우리의 소망이 더 윤택하고 화려한 삶을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 속에서 구별된,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데 있는 것임을 반복적으로 고백하고,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딛2:11-14). 더 화려하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에서 상당히 어려운, 쉽지 않은 일이겠습니다. 신앙고백을 확실하게 하고, 한번 힘을 내어봅시다.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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