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하나이 젠키치 vs. 수호 마사토(박용태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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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이 젠키치 vs. 수호 마사토
박용태목사
지난주 같은 노회 목사님들과 함께 전남 고흥에 있는 소록도를 방문했습니다. 소록도를 둘러보는데 인상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옛날 병원 앞에 서 있는 하나이 젠키치(花井善吉)라고 하는 소록도 2대 원장의 창덕비고 다른 하나는 중앙공원에 서 있는 4대 수호 마사토(周防正季) 원장의 동상좌대였습니다.
과거에 소록도는 환자 관리를 명분으로 행정, 사법 등 소록도 전역에 대한 통치권을 원장이 쥐고 있었다고 합니다. 원장의 왕국이었던 것입니다. 1916년 부임한 초대 원장 아리까와 도루(蟻川 亨)라는 사람은 모든 환자들에게 일본식 생활을 강요했습니다. 다다미를 깐 방에서 일본식 옷을 입고, 일본 그릇에다 일본식 밥과 단무지를 먹게 만들었습니다. 하루 두 번 점호를 하고 저녁 8시가 되면 통행금지를 시켰습니다. 자연히 소록도 환자들의 원성이 높았습니다.
제2대 하나이 젠키치 원장은 1921년부터 8년 동안 재직했는데, 소록도 환자들의 칭송을 받을정도로 환자들을 잘 돌보다가 1929년 소록도에서 순직했습니다. 하나이 원장은 일본식 생활을 강요하지 않고 우리나라 전통 솜옷을 입을 수 있게 했습니다. 3년제 학교를 세워서 젊은 사람들이 공부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고 가족들이 면회를 오면 만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치료 중에도 용무가 있으면 집에 다녀 올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22년 가을 전남 광주에서 전도하고 있던 다나까 신사부로(田中道三郞)목사를 소록도로 초청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고 예배처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복음이 선포되면서 눈물의 소록도는 찬송과 기도가 넘치는 은혜와 소망의 동산으로 변해갔습니다. 하나이 원장은 항상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환자를 대했습니다. 그래서 순직한 후 환자들이 돈을 모아 창덕비를 건립했습니다.
1933년부터 4대원장이 된 수호 마사토라는 사람은 소록도를 세계 최고의 한센병요양시설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을 강제 동원해서 벽돌공장을 만들고 병원 확장 공사를 했습니다. 환자들을 시켜서 소록도 일주도로를 만들게 했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후에는 매일 수만장 벽돌을 굽고, 매년 송진을 6천㎏, 가마니 30만장, 토끼 가죽 1500장, 숯을 3만포씩 만들어서 전쟁 군수물자로 일본에 보냈습니다. 환자들을 노예처럼 부리던 수호 원장은 심지어 자신의 동상을 만들어 세우고 매월 20일을 보은감사일로 정해서 모든 소록도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그 앞에 참배하게 만들었습니다. 수호원장의 학대로 인해 환자들의 병세는 더 악화되고, 고통스러운 삶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거나, 바다로 뛰어 들어 도망가다 익사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결국 수호원장은 1942년 6월 20일, 직원과 환자 3천여명이 자신의 동상 앞에 참배하기 위해 모인 정례보은감사일, 이춘상이라는 환자의 칼에 찔려 살해당했습니다.
하나이 원장의 창덕비와 수호원장의 동상좌대를 비교해 보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이처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타락한 이 세상에서는 수호 원장처럼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해 남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크고 작든 간에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다면 자신의 욕심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정말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연약한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성심으로 애쓴다면 우리의 수고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이 젠키치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에 좋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정말 아름답고 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10월 16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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